2008년 05월 06일
청계천 민주주의의 명암
이녁님은 이글루에서 유명한 블로거인데, 현재는 블로깅을 중단했다. (이녁의 모순없는 세계가 무너진 세계로 변한 상태,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고로 이 글을 허락없이 스켑렙에서 퍼오는건 예의가 아니다 싶지만, 내 코멘트를 스켑에 달기가 무서워서 퍼온다고 해두자.
청계천 민주주의의 명암
이 글의 링크를 보면 제봉님이 "선동"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볼때 이 광우병 관련 사태는 선동으로 벌어진 일이 맞다.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며 행동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선동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했으며, 더 나아가 현 정부(MB로 대표되는)에 대한 분노까지 직접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선동적인 글들이 지금 인터넷 곳곳 포털을 뒤덮고 있다. 전혀 상관없는 기사에도 광우병 관련 댓글이 달려 있으며, 이러한 댓글 대부분 현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결론 맺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선동이 나쁜 것일까? 예전 386세대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었을 때 선동이 없었을까? 4.19혁명에도 냉철한 이성에만 호소하였을까? 아닐 것이다.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직접행동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도 당연히 선동을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움직이기보다는 감정에 휘둘려 움직이기 쉽다. 오히려 감정이 결핍되어 있으면(나처럼) 움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여, 공포와 불안에 떨며, 정부에 대해 분노하라. 그 대신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당신들이 선거에 참여했든 안 했든)로 이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만은 잊지마라.
그런 고로 이 글을 허락없이 스켑렙에서 퍼오는건 예의가 아니다 싶지만, 내 코멘트를 스켑에 달기가 무서워서 퍼온다고 해두자.
청계천 민주주의의 명암
청계천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투표권이 없는 10대 소녀도 모였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20대 청년도 모였으며, 직장일에 시달리는 30대 직장인도, 10대 자식을 둔 40대 부모도 모였다. 그 모임을 정치 집회로 부르든 문화제로 부르든 촛불집회로 부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청계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명박 반대와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쳤다는 점이다.
청계천 집회는 많은 이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충격을 주었다. 벌써부터 낡은 색깔론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10대 청소년들이 몸소 나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에 감격한 사람들도 있다. 각종 메타블로그 사이트는 며칠 전부터 청계천 집회로 뜨겁다. 한 진보 언론사에서는 자못 감격스럽게 이번 청계천 집회를 '청계천 민주주의' 라 부르기도 했다.
청계천 민주주의! 멋진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특히 블로그를 하는 많은 이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10대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사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무능한 대통령과 무책임한 정부를 문책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그러나 잠시 감동과 열정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자. 과연 청계천 민주주의가 환영할 일일까? 청계천의 감동, 직접 행동의 감동과 열정에 휩싸인 나머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청계천 집회의 특성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고 본다. 첫째로 과장된 공포와 정부에 대한 분노에 많은 이들이 이끌렸다는 점. 둘째로 10대 청소년들의 참여가 활발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청계천 집회에 대응하는 정부와 정치권, 기성 언론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이다.
먼저 확실히 해 두자. 나는 이번 청계천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종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국민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공포가 사실 이상으로 과장되었고, 그 과장된 공포와 공포로 인한 분노가 청계천 집회의 원동력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청계천 집회를 다루고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이명박과 미국산 쇠고기를 규탄하는 블로그상의 수많은 글들을 살펴보자. 그리고 청계천에서 울려퍼진 구호와 외침들을 돌이켜보자. 종종 사실과 합리에 바탕을 둔 '개념글'이나 '개념발언' 도 있지만 대다수가 감정적이고 과장된 공포를 전하고 있다.
10대 청소년, 특히 여중고생들의 참여가 활발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청소년들의 참여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은 접어두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그곳에 모인 이유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누구의 비아냥처럼 어떤 유명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정말 사회의식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다. 호기심에 혹은 친구손에 이끌려 온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들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곳이 없었기 때문에 청계천에 왔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를 잡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 청계천 집회에 대응한 정부나 정치권, 기성 언론의 반응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심하기 짝이없다. 대통령은 매일 사태를 악화시키고 국민 여론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청계천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한 것은 현행 집시법 자체가 악법이며 시대 역행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결과만 낳았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성 언론 역시 이 일을 누군가의 선동이나 일부 시민의 난동쯤으로 축소하려 애쓰는데 급급하다.
이제 정리해 보자. 청계천 집회는 과장된 공포와 분노에서 시작되었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곳이 없었던 10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정치권과 정부, 기성 언론은 이 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대한민국의 의회 민주주의, 즉 제도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삐걱거리며 연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의회 민주주의, 간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물론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국민의 의사는 투표를 통해 반영되며, 정치인들과 정부는 끊임없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 통치행위를 하는 것이 간접 민주주의의 기본 컨셉이다. 그리고 언론은 그러한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간단히 말해 국민의 의사는 국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외치기 전에 제도적으로 정책 결정에 반영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국민 여론을 호도하기에 바빴고,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이 달린 중요한 일을 졸속으로 처리해버렸다. 여당은 정부와의 합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알 수 힘들정도로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기성 언론은 국민의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는 대신 국민 여론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적절히 요리하는 데 힘을 쏟고있다. 10대 청소년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구는 전무하다. 정부도 국민도 언론도 이성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보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애당초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한나라당이 원내1당이 되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하리라는 점에 주목한 이조차 거의 없었다.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인 투표가 실제 정치와 따로 노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투표 안한 20대도 이번 일에는 촛불을 들었더라" - 이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무관심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일 뿐이다.
결국 청계천 민주주의는 기존 정치 제도와 제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와 실망, 그리고 분노를 담고 있는 셈이다.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이룬 바로 그 제도적 민주주의 말이다. 과연 이것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을까? 작년 민주화 20년을 맞으며 우리는 "비록 민주주의가 일상에 뿌리내리지는 못했지만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루었다." 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제도적 민주주의마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음을 너무나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청계천 민주주의는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국 정치의 타락을 알리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이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 글의 링크를 보면 제봉님이 "선동"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볼때 이 광우병 관련 사태는 선동으로 벌어진 일이 맞다.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며 행동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선동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했으며, 더 나아가 현 정부(MB로 대표되는)에 대한 분노까지 직접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선동적인 글들이 지금 인터넷 곳곳 포털을 뒤덮고 있다. 전혀 상관없는 기사에도 광우병 관련 댓글이 달려 있으며, 이러한 댓글 대부분 현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결론 맺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선동이 나쁜 것일까? 예전 386세대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었을 때 선동이 없었을까? 4.19혁명에도 냉철한 이성에만 호소하였을까? 아닐 것이다.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직접행동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도 당연히 선동을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움직이기보다는 감정에 휘둘려 움직이기 쉽다. 오히려 감정이 결핍되어 있으면(나처럼) 움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여, 공포와 불안에 떨며, 정부에 대해 분노하라. 그 대신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당신들이 선거에 참여했든 안 했든)로 이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만은 잊지마라.
# by | 2008/05/06 19:42 | 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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